지난 수요일에 글또 커피챗을 진행하면서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사이드 프로젝트 얘기가 나왔는데,
바빠서 잊고 있었던 앱이 생각이 났다.
이따금 생각이 나는 그 앱은, 나의 2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열정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앱이었다.
언젠가 다시 고쳐서 새로 올려야지 올려야지 하면서도 이제는 예전만 못한 열정과 실행력 때문에 여전히 올드한 UI/UX 그대로인 앱. 이 앱은 내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줬기 때문에 아직도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이기도 하다.
생각이 난 김에 아주 오랜만에 개인 계정으로 앱스토어를 로그인했다.
2014년 5월 8일. 내가 만든 첫 앱이 앱스토어에 등록된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혹시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 몇 번이나 체크하고 심사를 요청했다가, 아쉬운 부분이 보이면 다시 취소하고 고쳐서 다시 올리고…
심사에 떨어졌을 때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떨면서 잘못된 부분을 후다닥 고치고 다시 심사를 요청했다.
노심초사 간절히 심사통과만을 기다리다가 새벽에 울린 알림을 받고는 들뜬 마음으로 출시 버튼을 눌렀던 게 바로 엊그제인 것만 같다.
버전 기록을 쭉 훑어봤다. 14년 5월에 출시 후 14년 12월까지 약 반년간 17번의 업데이트를 했다고 기록이 나온다.
못해도 한 달에 두 번은 새로운 버전을 출시한 셈이다. 이렇게 기록으로 보고 나니 내가 그때 가졌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기도 한다.
난 첫 회사를 게임 개발자로 취직했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았고 스스로 너무 무능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지하철에서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대학 동기를 만났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생각지도 못하게 iOS 개발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그 친구의 차를 타고 홍대에서 70 만원을 주고 포맷도 안 된 맥북에어를 중고 거래했다. 차 본네트 위에서 열심히 포맷을 시도하던 판매자가 포맷이 안 되자 꼭 포맷(수집한 굉장한 영상들을 삭제)하라며 신신당부하던 그 맥북은 내 인생을 바꿔준 공신이기도 하다. 이후 난 회사 근무가 끝나면 집에 가서 xcode를 켜고 미친 듯이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이 망하면 내 인생도 망할 거라는 강박관념을 지닌 채 밤도 지새우며 수개월을 지냈고 결국 앱을 출시했다. 출시와 함께 물밀듯 쏟아지는 신규 유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앱을 바꿔왔다. 노력의 결과일까. 하루하루 늘어나는 유저들과 수직상승하는 수익 그래프를 보면서 정말 꿈만 같았던 시간을 보냈다. 단칸방 자취생활을 하며 피폐해져 버린 멘탈도 치유되는 듯했다.
집에서도 아들이 잘 풀리니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심지어 동생은 내가 벌어오는 수익을 보고서 iOS 개발자로 진로를 잡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iOS개발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제 내 인생도 탄탄대로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일만 남은듯했다. 그러나 그게 쉽다면 인생이겠는가? 앱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끊임없는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다 돈에 혈안이 된 사람들 때문이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 놈은 뒤에선 나를 어떻게든 망하게 하려고 분주하게 노력하고 있었고, 동등한 위치라고 생각했던 다른 동료에겐 아쉬운 소리도 많이 들었다.
당시의 나는 개발도 잘 못하고, 사업도 잘 몰랐기 때문에 항상 어리숙하게 행동했다. 내가 좀 더 주도면밀하고, 명석하게 행동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는 이런저런 견제와 인프라 사고가 엮이면서 앱과 함께 내 멘탈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2017년 10월. 3년여 시간을 공들였던 앱을 나 스스로 판매중단 시켰다.
처음 앱을 출시했을 때의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스트레스와 심한 두통만 남긴 채, 내 앱은 수명을 다 했다.
판매 중단을 결정하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부심이었던, 내 인생 가장 열정적인 에너지를 쏟았던, 그리고 내 밥줄이었던… 앱을 마켓에서 내리고 나면 나에겐 뭐가 남을까. 3년간의 내 노력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듯 해서 심한 우울감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막상 앱을 내리고 한 달쯤 지나자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처럼 머릿속이 너무나 깨끗해지는 게 느껴졌다.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생활들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점점 앱은 잊혀 갔고. 앱을 운영했던 3년간의 기간은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지나고 나면 다 좋은 추억이 돼버리는 걸까? 힘들었던 건 분명하지만 그 경험들 모두가 나를 성장시키는 좋은 양분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책상에 앉아 옛 기억을 떠올리니 나만의 감성에 빠져 글이 줄줄 나와버린것 같다.
결론은 이번 글또 여정이 끝나기 전까지 해야 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사용하고 싶은 기술도 마음껏 사용해 보고, 나의 지난 열정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끄집어내어 판매 중단되었던 앱을 다시 고쳐 보려고.
육아도 하고 앱도 만들고 ㅇㅇ... 그래 보려고.
이제는 수익도 사용자도 기대할 수 없겠지만 약간 ~ 반려앱 느낌으로 느긋하게 내 애정을 조금씩 쏟아보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작하지? 바로 내일부터 시작해야겠다.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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